20년 전과 10년 전은 내 삶에서 꽤 중요한 순간들이라 간단하게 당시의 기억을 남겨본다.
[ 20년 전 ]
2003년 9월 15일에 군대에 입대했다.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받고, 10월 말에 강원도의 한 부대에 배치되었다. 11월에는 자대의 신병훈련소에서 2주간 훈련을 받았고, 정신 차려보니 12월 이맘때쯤이었다. 3111 찐행정병이었는데, 약간 작전병 같은 느낌의 포지션에서 근무했다. 마침 해당 부대가 특별한 책을 만들고 있어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문서 작성과 PPT 작성을 했다. 그리고 탄약고에서 근무를 서고, 또 같은 날에 불침번 근무를 섰다. 하루에 3회 근무가 들어가는 날이 적지 않게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 그맘때 우리 분대는 배식 담당이었으며, 그해 겨울에는 눈이 정말 많이 왔다. 일하고 근무 서고 눈 치우고 배식하는 일을 반복했다. 배식이 끝났을 때도 일하고 근무 서고 눈 치우는 일을 겨우내 했다. 자대 배치를 받고 일병이 되기 전까지 이 3~4개월이 아마도 내 인생에서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들었던 때였던 것 같다.
2004년 3월에 일병이 되었다. 놀랍게도 이후 군 생활은 전역할 때까지 너무나도 편했다. 해당 부대가 만들던 특별한 책이 완성되었고, 탄약고 근무는 다른 부대에 넘어갔다. 그다음 해 겨울에도 눈이 많이 왔으나 웃으면서 눈을 치울 수 있을 정도의 멘탈과 육체적 강인함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계급도 높아서 더 이상 이등병 때처럼 힘들지 않았다.
나는 군 생활 내내 이등병 시절을 생각하며, 다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내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군 생활이 끝날 때까지 다시 그런 고통은 없었다. 6개월은 정말 힘들었고, 나머지 1년 6개월은 너무나도 편했다. 어린 나이의 병사인데도 굉장히 대우를 해줬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당시의 간부들과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또 미안하다. 좀 더 따뜻할 수 있었는데, 이등병 때 고생해서 늘 가지고 있는 긴장감이 너무 커서 차갑고 비관적인 면이 많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군 생활에서 배운 것은 아래와 같다.
[1] 자대의 신병훈련소에서 훈련받으며, 내가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에 운동을 생활화했다.
[2] 눈을 치우면서, 내가 일명 “뺑끼”가 있는 스타일의 인간인 것을 알았다. 나는 살기 위해서 “뺑끼”를 제거했다.
[3] 세상에는 우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좋아졌다.
[4] 좋은 대우를 받으며, 드디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었다.
★ 군 생활이 끝난 이후 첫 번째 회사에서 퇴사할 때까지, 인생이 재미있었던 것 같다.
[ 10년 전 ]
10년 전 이맘때에는, 결혼식(2014년 2월 9일)을 앞두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업을 개인 사업자에서 법인 사업자로 전환했던 시기이다. 가진 것은 없었는데, 자신감은 넘치던 시절이다. 30대 초반 남성의 강력함이 있었던 시절이다.
이때쯤 정말 좋아하던 선배가 돈을 꿔갔다. 120만 원이니 사실 큰돈은 아니다. 약속된 날짜에 돈을 갚지 않자, 당시 장사에 심취했던 나는, 선배에게 전화해서 꽤 모질게 말했던 것 같다. 이후 그 선배와는 다시 연락되지 않는다. 당시에 그 선배는 꽤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괜찮아졌으려나? 우울했던 나의 20대 후반을 함께 했줬던 너무 감사한 선배였다. 이 선배가 내 친구를 통해 결혼식 축의금으로 7만 원을 보내주었다. 5만 원은 주기 싫었을 것이고, 10만 원은 커서 못 주는 상황이라서, 7만 원을 보내준 것으로 보인다. 이 선배와 함께 한 많은 시간은 나에게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120만 원보다 훨씬 많은 경험과 대우를 준 선배였다.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지만, 언제나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별일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만나고 있었을 것이다.
결혼은 좋았지만, 결혼식 준비는 지옥이었다. 그때 결혼식에 내가 개인적으로 부른 사람 중에 지금까지 보는 사람들은 내 불알친구들과 그 외의 지인 1명 정도가 다인 것 같다. 나머지 인원들은 지금까지 볼 일이 없다. 누가 잘못했다기보다는 서로 안 맞거나, 오해가 있거나, 그랬던 것 같다. 그 상황에 서로 풀 필요가 없는 관계이니 그대로 관계가 끝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괜히 부른 것 같고, 지금 생각해도 조금 부끄럽다. 결혼식 하루를 위해서 괜히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소환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분들은 추억 속에서 진심으로 소중한 분들이다. 하지만 지속 불가능한 관계인데, 그것을 이용하려고 한 것 같아서, 그것이 부끄럽다.
결혼식 준비를 하며, 식장과 드레스, 한복, 커플링과 금 등 다양한 것들을 구매했다. 대부분 반 사기꾼이다. 다시 태어나면 결혼은 해도 결혼식이라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가끔 와이프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 결혼식을 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식은 하기 싫어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얘기를 한다. 맞는 말이다. 결혼식은 역시 부모님의 행사인 것 같다. 장사를 시작하면서 어디 가서 무엇을 구매하는 것을 굉장히 꺼리는데, 결혼식 이후에는 아예 어디에서 무엇을 사고 싶지 않다.
이때 전환한 법인 사업자는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승승장구했다. 덕분에 경제대학원도 다니고, 흙수저인 나의 삶도 꽤 풍요로워졌다. 그리고 2019년부터 위기를 맞이했고, 2023년 현재까지 그 위기는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 지금 ]
2023년 사업적으로 여전히 위기 속에 있다. 20년 전 군 생활부터 지금까지 배운 다양한 것들을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자신감을 갖자. 나는 믿어도 되는 사람이다. 두려워하지 말자.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