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양성에 대한 존중
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가난하던 1968년도에 서양에서는 68운동이 있었다고 한다. 좁은 의미로 1968년에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일어난 반정부 운동을 의미하며, 넓은 의미로 196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세계적 사회 운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주로 자유와 다양성에 대한 운동이었고, 이 운동의 결과는 지금의 서양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나쁜 영향을 먼저 얘기하자면 [마약과 관련된 부분] 등이 있을 것 같고, 좋은 영향을 얘기하자면 [모든 자유로움]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다. 이런 비슷한 운동이 우리나라에는 없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는 이에 따른 [모든 자유로움]이나 [다양성에 대한 존중]도 없고, 또 이에 따른 나쁜 영향도 받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에 대한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 접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서양의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한 정도였을 것 같다.
앞으로의 나에게는 [모든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2]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경우는 많지 않다. 그 때문에 나는 이런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 상대를 굉장히 귀하게 생각한다. 사실 주로 종교인이다. 지금까지 만난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은 사실상 모두 종교인이다.
-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모든 종교인이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모두 종교인이었다는 것이다.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종교인 중에서도 매우 극소수였다.
개인적으로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던 적은 일시적으로 나의 조언을 듣는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가진 적은 있어도, 그 외에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던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가족과 친척 중 극히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 그런 좋은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대단히 위대한 마음이다. 나는 진짜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깊이 존중한다. 깊이 사랑한다.
앞으로의 나에게도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3] 결론
아마도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완벽하게 갖지는 못할 것 같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생각이며,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종교인 외에는 갖기 힘든 마음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두 가지를 완벽하게 갖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