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자
보통 한 해에 몇 달은 적자를 겪는 것 같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며 회사가 망한다고 설레발을 치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잘 그러지 않는다. 시장 전체의 하락세와 함께 매입이나 마케팅에 문제가 생길 때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고, 보통의 경우에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다 보면 적자의 끝에는 큰 흑자가 오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남는 시간들을 활용하여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가며 더 많은 것들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는 말, 지금까지는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한다. 적자 폭이 처음 겪어보는 수준이라 웃음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과연 이번에도 이 위기가 기회가 될까? 늘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저 현재에 대한 상황과 새로운 분야에 대해 분석을 해나가며, 해당 분석의 결과에 따라 노력을 해나갈 뿐, 앞으로의 일은 전혀 알 수가 없다.
▣ 손금
회사 상황이 이렇게 좋지 않을 때마다 떠오르는 재미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2010년 여름이 끝나가는 때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우리 회사 규모는 아주 아주 작아서 나와 동업자 두 명만이 일하고 있었고, 분위기는 망해가는 분위기였다. 무언가 망하지 않는 어떤 방법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때는 다양한 음악 플레이어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어떤 40대 초반 정도가 되어 보이는 여성 고객이 방문하여 MP4 플레이어를 보여달라고 했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대와 작은 액정 화면을 요구하여 해당 가격대에서 가장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되었던 오라컴의 MP4 플레이어를 추천하고 판매하였다. 망해가는 회사에서 할 일도 없고 하여 그 손님한테 해당 기기의 사용 방법에 대해 아주 자세히 말해주었다. 손님이 그런 나의 태도나 내 생김새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이 손금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있다며, 내 손금을 보고 세 가지를 말해주었다.
첫 번째 내용은 내 손금이 잔선들이 십자가 모양으로 많이 있는데 이 것은 내가 미스테리 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내가 손금 같은 것을 보는 것도 좋아할 것이라며 자신과 같은 형태라고 더 좋아해주셨다. 이 내용은 맞는 말이었다. 나는 UFO, 핵 폭발, 방사능, 케네디 암살과 같은 것들부터 상대성이론, 미국 중앙은행 등의 내용까지 조금 신기한 내용이 있다 싶으면 늘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며 해당 내용들을 보고 즐기는 편이다. 그러다가 경제학까지 공부하게 된 것이니, 좋은 성향이라고 생각된다.
두 번째 내용은 32살에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만으로 따진 것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실제 결혼은 만 31살, 우리나라의 나이로는 양력 나이로 32살, 음력 나이로 33살에 했다. 그냥 이 분이 맞춘 것이라고 하고 싶다. 맞췄다고 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세 번째 내용이 너무 좋아서 이 분이 한 예언(?)이 다 맞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세 번째 내용은 40살이 되면 부자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는 내가 부럽다고 하였는데 진심으로 부러운 눈빛이었다. 자신이 본 손금이니 정말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 나는 크게 웃었다. 지금이야 어쩌면 가능하기도 하겠다 싶지만, 그 때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나이가 29살이었기에, 당장 30대에는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재물운이 좋은 편이기는 하지만 부자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이제는 30살보다 40살이 더 가까워졌다. 과연 이 분의 말은 맞을까? 맞았으면 좋겠다.
이 손님을 만난 뒤 부터 회사 상황이 조금 안 좋을 때마다 멤버들에게 이 얘기를 해준다. 걱정 말라고, 내가 40살이 되면 부자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망하면 부자가 될 수 없으니 아마 우리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참 웃기는 말이다.
이제는 손님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할 일이 많지 않아서 이런 일들이 별로 없지만, 오히려 어려웠던 시절에는 이런 대화들이 많았고 덕분에 즐거웠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지긋지긋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립기도 하고, 또 그 때의 이런 저런 사람들과의 많은 대화들이 사람에 대한 내 가치관을 조금이라도 좋게 형성해준 것 같아서 고맙게 느껴진다. 기억나는 많은 손님들은 다들 잘 살고 계실까? 특히 이 손님은 잘 살고 계실까?
▣ 한계분노성향
최근 매우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토요일 대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학교에 갔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려고 했는데 각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애를 먹고 있었다. 초보 운전자이기에 간혹 생기는 일이었다. 이 상황에 다른 차량이 등장했다.
나는 이 분이 내가 주차를 잘 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토요일 아침에 학교에 오는 사람은 대학원생과 교수님들 밖에 없을 것 같았고, 이 곳이 매너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 문화가 존재하는 나름 고귀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시간 계산에 의하면 45초 정도가 지났던 것 같다. “빵! 빠아앙!”. 나는 놀랐다. 클락션 소리에 놀란 것이 아니라 내 예상에 벗어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분은 누구신가?
당황스러웠지만 접촉사고가 나면 안되니 침착하게 끝까지 다시 앞으로 다시 뒤로 하여 주차를 무사히 완료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 분이 기다린 시간은 총 1분 정도가 되었다. 오래 기다린 것인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라면 클락션을 울리지 않는 수준의 시간이다.(사실 나는 10분이 걸려도 클락션을 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주차를 완료하자 이 차량은 화난듯한 움직임으로 빠르게 전진하여 빠르게 주차를 완료하였다. 물론 이 분은 자신의 기다림에 대한 화남이 클락션을 울린 것으로 끝나지 않아서, 차의 움직임으로 한번 더 푸신 것 같다.
나는 이 분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차에 앉아서 잠시 기다렸다. 그런데 이 분이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으셨는지 내 차를 응시한다. 내가 즉시 차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나가니, 이 분은 빠르게 주차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때문에 안타깝게도 이 분의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이 분의 가는 뒷 모습만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는지, 누구인지 궁금했다.
이 분의 가는 방향을 보니 다행히 나와는 연관이 없는 곳으로 이동하셨다. 혹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장사의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이 분의 가는 뒷 모습의 걸음걸이를 보면 허세남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얼핏 보면 남자 답지만, 제대로 알고 보면 약해 빠진 사람. 사실 나는 이 분이 자신의 차를 주차한 뒤 나에게 가벼운 사과를 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없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나의 분노 게이지도 학교 수업을 들으며 혼자서 서서히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뭔가 무시 당한 것만 같았다. 누가 갑자기 길거리에서 한 대 훅 치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참 더러운 기분이었다.
내 차는 빨간 미니 컨트리맨이기 때문에 이 분은 이 차에 20대의 어린 친구 혹은 여성, 또는 덩치가 작은 남자가 타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마음껏 클락션을 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분의 걸음걸이에 따르면 이런 비굴한 내용이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클락션, 차의 화난듯한 움직임을 통해 두 번의 본인의 분노 표현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응시를 통해 세번째 분노의 표현을 하며, 네번째 분노의 표현을 하기 위해 내가 차에서 내릴 때 까지 기다리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렸는데 작지 않은 덩치의 나이가 어리지 않은 남자인 것을 확인하고 그냥 뒤돌아 간 것으로 파악된다. 혹은 이 분이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지각이니 급해서 그냥 간 것일 수도 있다. 이 때 이 분이 한 마디라도 하셨다면 나도 가만히 참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생겼다면 나도 어이없게 후회하고 있겠지.
- 여담이지만 이 분들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가서 먼저 뭐라고 따지면, 무슨 소리냐고, 자신은 분노를 표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쁘고, 그냥 시간이 지체되서 클락션 살짝 울린 거라고 말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며, 역으로 따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먼저 가서 뭐라고 하면 피곤해지기도 한다.
나는 궁금하다. 첫째, 차를 더 크고 더 비싼 것으로 사야 했던 것은 아닐까? 둘째,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따라가서 욕을 했어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번처럼 가만히 무시 당하고 끝난 것이 맞는 것일까? 셋째, 운전과 관련된 경우를 제외하고도 이런 비슷한 경우가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넷째, 이런 나는 제정신인 것일까?
이와 비슷한 일로 분노를 폭발 시킨 적도 상당히 많다. 분노를 폭발 시키는 경우에는 누가 먼저 잘못한 것과 옳고 그름의 상관이 없이 많은 후회를 해야만 했다. 일과 관련하여 필요해서 한 연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반대로 이번 일처럼 그냥 지나가서, 혼자 분노 게이지가 상승해서 몇 일 동안 혼자 앓은 적도 많다. 결국 이런 일은 내 속에는 아직 답이 없다.
결국 난 다음 차는 사고 싶은 차가 아닌, 남들에게 강하고 비싸게 보여지는 차를 구매하고, 운전을 더 열심히 연습하고, 이와 비슷한 또 다른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고 한편으로는 돈까지 더 많이 벌려고 발악을 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시에 대한 내 분노 게이지의 상승률(한계분노성향?)을 낮추는, 어쩌면 자존감을 낮추는 그런 바보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세상에 이런 일 참 많을 것 같은데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진다. 무엇이 훌륭한 삶일까…
올 해가 지나기 전에, 그리고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겠다. 이와 비슷한 경우 아이에게 싸우는 모습을 보인다면 부끄러운 일이며, 또는 반대로 싸우지 않고 무시 당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또한 부끄러운 일이니 뭔가 답을 찾아야 한다. 이런 것에 나만의 정답이 있는 훌륭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 학교 독서실
지난 학기부터 학교 대우관에 독서실이 생겼다. 가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크고 좋은 중앙 도서관을 두고도, 독서실은 또 각 과 별로 따로 있는 것 같다. 역시 좋은 학교라 다른 것 같다. 한 쪽은 거의 카페처럼 해놓았고, 한 쪽은 일반 독서실처럼 해놓았다. 시험 기간이 되면 가끔 애용하는데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2017년 4월도 끝이나고, 5월이 오고 있다. 부디 집, 회사, 학교에서의 일들이 모두 잘 풀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