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동안 준비했던 영국 런던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여행을 와이프 보라씨와 함께 다녀왔다. 여행 전에 항공편, 숙소, 오페라의 유령, 스카이가든, 안네프랑크하우스를 와이페이모어, 아고다, 시트플랜, 각각의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예약였고, 나머지 이동경로는 여행 전에 혹은 여행 중의 상황에 맞게 보라씨가 계획/진행했다. 여행자 보험은 삼성화재 다이렉트로 가입하였고, PP카드는 신한 클래식과 현대 다이너스티에서 제공하는 카드였다.
나는 별 생각없이 편하게 갔기 때문에 보라씨가 없었다면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로는 런던/암스테르담을 제대로 구경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때문에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런 나약한 나를 잘 이끌어준 보라씨에게 감사하며 시작한다. 보라씨는 이동 경로를 준비/진행하며 구글지도, 씨티맵퍼의 도움을 받았으며 여행 관련 여러 정보를 각종 블로그를 통해 얻었다고 한다. 분명히 가기 전에 시간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고 있었는지 참 대단하다. 전체 일정은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았으며 다른 나라 언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글로 표현하겠다.
2월 14일(화) | 집 ▶ 인천공항(AM 10:30) ▶ 아시아나 라운지(조식) ▶ 영국항공 탑승 ▶ 히드로공항[런던](PM 02:00) ▶ 숙소[루나&시몬느] ▶ 빅벤 근처 야경 감상 ▶ 오솔레미오(석식) ▶ 숙소 |
2월 15일(수) | 숙소(조식) ▶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 웨스트민스터 사원 ▶ 스카이가든 ▶ 옴니노(중식) ▶ 영국은행박물관 ▶ 타워브릿지 ▶ 런던탑 ▶ 숙소 ▶ 여왕폐하의극장[오페라의유령] ▶ 숙소 |
2월 16일(목) | 숙소(조식) ▶ 대영박물관 ▶ 플랫아이언(중식) ▶ 버버리아울렛 ▶ 숙소 ▶ 버킹엄 궁 ▶ 버거앤랍스타(석식) ▶ 숙소 |
2월 17일(금) | 숙소 ▶ 오이스터카드 반납 ▶ 숙소(조식) ▶ 히드로공항[런던] ▶ 택스리펀(1) ▶ 아스파이어 라운지(중식) ▶ 영국항공 탑승 ▶ 스키폴공항[암스테르담] ▶ 숙소[더블트리 바이 힐튼] ▶ 근처 거리 관람 ▶ 라 산타마리아(석식) ▶ 숙소 |
2월 18일(토) | 숙소 ▶ 조식(안네프랑크하우스 근처) ▶ 안네프랑크하우스 ▶ 커널크루즈 ▶ 더팬케이크베이커리(빈대떡집) ▶ 하이네킨체험관 ▶ 네덜란드 왕궁 ▶ 마네킨피스 ▶ 숙소 |
2월 19일(일) | 숙소 ▶ 택스리펀(2) ▶ 스키폴공항[암스테르담] ▶ 영국항공 탑승 ▶ 히드로공항[런던] ▶ 아스파이어 라운지(중식) ▶ 영국항공 탑승 |
2월 20일(월) | ▶ 인천공항(AM 08:30) ▶ 회사로 출근 |
오전 6시에 기상하여 아버지 차를 타고 인천공항까지 이동하였다. 7시 30분에 공항에 도착하여 바로 티켓팅하고 수화물을 부친 후 출국 심사도 바로 진행. 면세점에서 담배를 사고, 미리 이벤트에 등록해놓았던 기내용 슬리퍼 2개를 받고 아시아나 라운지로 이동했다. 예전 신혼여행 때 PP카드를 가지고 나오지 못하여 라운지 서비스를 못 받은 것이 내내 아쉬워서 이번에는 PP카드를 제대로 소지하고 아시아나 라운지에 입장. 럭셔리하게 꾸며놓았고, 아주 괜찮은 먹을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매우 쓸만했으며, 안마의자, 샤워실 등의 편의시설이 무료임에도 완벽했다. 이 곳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잭콕을 만들어 마셨다. 기분이 업업!!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PP카드는 우리 여행 일정에 무척 중요한 요소였고, 없었다면 상당한 수준의 불편함을 겪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라운지에서 나와 한국시간으로 10시 30분에 영국항공 탑승. 12시간동안 밥을 두 번 주고 중간 시간에 신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오랜만의 기내식이라 기대했지만 나는 기내식에 설레임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워낙 외국음식을 잘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보라씨가 시킨 치킨 어쩌구는 나에게는 정말 끔찍한 맛이었다. 그리고 돌아올 때 안 사실이지만 이 때 먹은 두 번의 기내식은 맛있는 편인 것이었다. 신라면과 각종 음료로 허기를 달래가며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조순 역)’ 을 읽으며 손쉽게 잠들었다.
긴 시간이 지나고, 영국시간으로 오후 2시에 히드로 공항에 도착. 입국심사 후 공항을 빠져나와 별 생각 없이 블랙캡을 타고 팀리코의 벨그레이브 로드에 있는 루나시몬느 호텔까지 이동하였다. 도착하니 거의 90파운드로 우리나라 돈으로 10만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이 때는 런던의 물가가 비싸다고만 생각했다. 그것이 모범택시이고 매우 좋은 것이라는 것을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미니캡을 탔으면 거의 반 가격이었을 텐데 말이다.
루나시몬느 호텔은 아고다의 사진과는 다소 달라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방이 좁고, 방음도 잘 안되며, 깨끗함의 수준도 더럽지 않은 정도였다. 하지만 매우 좋은 위치에 있다는 것과 조식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좋았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서 데이터 확보를 위한 3사의 SIM 카드 와 교통을 위한 오이스터 카드를 구매하니 이제 런더너가 된 것 같은 마음이라 기뻤다.
첫 날은 호텔에 도착하고 짐을 풀면, 시간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 특별한 일정을 두지 않았었는데, 심 카드와 오이스터 카드 덕분에 런더너가 된 기분이 되어버렸고 결국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24번 2층 버스를 타고 팔리아먼트 스퀘어 가든으로 이동하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빅벤(엘리자베스 타워)과 런던아이를 볼 수 있엇다.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해서 아름다운 경관을 기분 좋게 둘러보고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를 조금 더 걷다가, 조용하고 차분한 저녁식사를 위해 다시 숙소 근처인 핌리코로 이동하였다.
처음 런던을 거닐며 생각했던 특이한 점은 영국은 파란불이 아닐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불법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교통난을 해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도로는 폭이 좁아서 무단횡단을 해도 크게 위험한 일도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도로 사이즈가 다르고 개념이 다른 것일 뿐, 이런 것이 문화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길거리에는 달라붙은 껌이 가득했고, 담배는 금연 표시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필 수 있으며, 꽁초는 아무 곳에나 버리는 스타일이었다. 가기 전에 생각했던 런던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다.
※ 런던에서는 무단횡단이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
야경 감상을 마치고 숙소 근처에 도착하여 조금 걷다 보니, 오솔레미오라는 피자/파스타 집이 있어서 그곳에서 피자와 파스타로 저녁을 먹었다. 그 당시에는 좀 짜다고 느꼈던 짭짤한 피자와 한국에서 늘 먹는 맛의 파스타는 첫 저녁 식사로 꽤 괜찮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짭짤한 피자가 다시 먹고 싶다. 끌리는 맛이다. 이렇게 첫 날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바로 뻗어버렸다.
15일 오전 7시쯤 일어나서 샤워 후 바로 식당으로 직행. 아침 메뉴는 베이컨-달걀, 햄-토마토, 삶은 달걀 세가지 중에 고르는 것이고, 빵은 브라운과 화이트 중 선택할 수 있다. 3일동안 세가지를 다 먹어봤는데 베이컨-달걀만 맛이 있었다. 물론 빵과 잼은 내가 알고 있는 그 맛으로 늘 맛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동하려고 했으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9시 30분에 문을 열기 때문에 가는 길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으로 먼저 향했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카톨릭교회의 주교좌 성당으로 역시 아름다웠다. 겉에서만 구경하기 아쉬워서 잠시 들어가서 촛불에 불을 붙이고 잠시 기도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웨스터민스터 사원으로 이동. 영국은 국교가 성공회라 당연히 웨스터민스터 사원은 더욱 웅장했다. 입장은 유료, 티켓을 사고 입장하니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주었고, 어렵지 않게 관람할 수 있었다. 내부는 역시 듣던대로 웅장했고, 볼거리가 많았는데 대부분은 무덤이었다. 아쉬웠던 것은 뉴튼과 다이애나비, 메리 스튜어트를 제외하고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영국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들 만큼 즐기기는 어려웠다는 점과 사진 촬영이 금지라서 사진은 한 컷도 건질 수 없었다는 것.
다음으로 11시 30분에 미리 예약되어 있는 스카이가든으로 이동했다. 한 30분 정도동안 런던 시내를 위에서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좋은 시간을 보낸 후 점심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근처에 알려진 유명한 맛집이 없는 관계로 급히 구글링하여 그 중에 평이 좋은 옴니노로 이동하였다. 엉덩이살 스테이크,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초록 파스타와 샐러드를 시켜먹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이 집은 음식, 분위기, 서비스의 수준이 모두 높은 편이고, 그에 따라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에 있었던 세계에서 두번째로 탄생한 중앙은행인 영국은행으로 이동하였다. 생각없이 영국은행으로 진입하니 시큐리티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는 옆에 박물관이 있으니 그 쪽으로 가보라고 하여, 다시 영국은행 박물관으로 이동. 그 곳은 어린이들이 많은 곳이었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이유와 화폐의 유통방식에 대해 자세히 표현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이 박물관에는 화장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화장실을 찾아 급히 탈출해야 했고, 이 때가 유럽에서 흔히 발생한다고 하는 화장실 문제가 우리에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박물관에서 나온 뒤, 근처에서 화장실 이용을 위해 카페를 찾아 서성이다가 카페 네로를 발견하여 즉시 입장. 화장실을 사용하고, 커피도 한 잔씩 즐길 수 있었다. 런던답게 어느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버스를 통해 타워브릿지로 이동하였다. 다리를 건너며 땅콩과자 파는 아저씨를 발견하여 땅콩도 먹으며 경치를 기분 좋게 즐겼다. 그런데 나에게 다시 화장실 문제가 찾아왔다. 땅콩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큰 것이 급해졌다. 보라씨에게 말을 하고 화장실을 찾아 이동하였다. 다리 밑으로 내려 가니 식당과 카페가 많이 있었는데 우리는 밥과 커피를 먹은 뒤라서, 런던에서는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리우는 지하철역을 찾아 이동했다.
꽤 오래 걸어서 드디어 지하철역 발견. 드디어 화장실을 갈 수 있겠구나 하며 입장하려 했는데, 허걱, 안에 화장실이 없었다. 나중에는 그 상황이 웃겼지만 그 때는 진심으로 짜증났다. 그리고 보라씨까지도 화장실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에 묻고 물어, 또 다시 긴 거리를 이동하여 결국 화장실을 발견했는데, 그 곳에는 유럽 어느 나라 고등학교 남자 아이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가고 있었다. 보라씨가 나에게 화장실이 유료일 수도 있다며 50펜스 동전을 주며 여자화장실로 들어갔고, 홀로 남겨진 나는 화장실 이용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그 고등학교 남자 아이들이 웅성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대충 보니 그 친구들은 50펜스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화장실 이용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손에 있는 50펜스의 동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당당하게 그들을 추월하여 화장실에 입장했다. 이렇게 해서 깨끗한 유료화장실에서 조용히, 편안하고 안락하게 볼 일을 보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까지도 그 친구들은 심각한 표정들로 처음과 같은 자리에 서있었다. 아마 선생님이 돈을 바꾸러 갔을 것 같다. 볼 일은 잘 보고 돌아갔을지 궁금해진다.
화장실 이용을 마치고 여유롭게 담배를 태운 뒤, 타워 오브 런던, 런던 타워, 블루디 타워로 다양하게 불리우는 런던탑을 겉에서만 구경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잠시 들어갔다가 나왔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당시에는 너무 지쳐있었고, 많은 인파에 줄서기는 싫었었다. 거기에 저녁 스케줄이 남아있는 상황이었으니 내부 구경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결국 지하철을 이용하여 숙소로 들어가서 짧은 휴식을 취했다.
런던 지하철의 특이한 점으로는 튜브라고 불리우는 열차가 한국보다 작고, 지하에서는 전화/인터넷이 모두 단절된다. 또한 예전 2002년 월드컵때 쯤에 한국에서 시행했다가 지금은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오른쪽은 서있고, 왼쪽은 걷는 문화가 이 곳에서는 현재의 룰이다. 그리고 위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장실이 없는 역이 많다.
옷을 적당히 차려 입고 저녁을 먹지 않은 채로 버스를 타고 오페라의 유령 관람을 위해서 여왕 폐하의 극장으로 이동하였다. 뮤지컬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오페라의 유령 런던 오리지널에는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 본 뮤지컬이 한국에서의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팀 25주년 내한공연이었고, 굉장히 감명 깊게 보았기 때문에, 런던에서는 그보다 더 완벽한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런던 오페라의 유령은 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런던 오페라의 유령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쓸 예정이지만, 사운드와 배우들의 실력 면에서 아쉬웠다. 전체 사운드는 작았고 주연급 배우들의 실력이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오리지널 내한팀이 막강한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런던까지 와서 보는 것인데 이 정도 수준이라니, 대단히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 오페라의 유령 in 런던 후기 : //hyunsik.me/wordpress/?p=9152
극장의 특이했던 점은 한국과는 다르게 공연 중에 어느 정도 이동이 가능하며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한국에서 뮤지컬 공연을 볼 때 느낄 수 있는 화장실 문제가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문화가 자신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범할 수 없는 배려의 문화라면 런던의 문화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데 그 범위가 타인의 자유를 어느 수준 침범할 수 있는 문화인 것 같다. 이것은 피해를 서로 전혀 주지 않는 것과 피해를 서로가 주고 받는 것 정도의 차이라서, 결과는 똑같은 것으로 보여지는데 나는 그래도 배려의 문화가 좋다.
뮤지컬이 끝나자 시간이 11시에 가까웠기 때문에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 보다는 피쉬앤칩스 같은 음식을 포장해가서 숙소에서 먹으려고 했으나 테이크 아웃이 가능한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숙소로 돌아가서 신라면과 슈퍼마켓 과자/음료/맥주를 사서 먹고, 바로 뻗었다. 결국 피쉬앤칩스는 여행내내 먹어보지 못했다. 이 때가 절호의 기회였는데 말이다. 물론 피쉬앤칩스가 크게 아쉽거나 하지는 않다.
16일은 오전 8시 정도에 일어나서 바로 호텔 조식을 먹고, 씻은 후에 대영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에 슈퍼마켓에 들려서 간식거리를 적당히 챙겼다. 대영박물관에 도착하고 보니 여기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하루가 아니라 몇 일이 걸릴 정도의 큰 사이즈였다. 대영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세계의 유물이 있는 지구 박물관급이었다.
오디오가이드를 유료로 빌리고 책자를 구매한 뒤, 한국관/중국관/일본관을 먼저 감상하였다. 그렇게 아시아관을 감상한 뒤, 박물관의 나머지 부분들이 너무나 넓어서 오디오가이드가 제시하는 중요한 유물들만 보며 빠르게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12시쯤 중간 지점에서 간식거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1시간 가량 더 보다가 빠져나왔다.
위 사진의 모아이는 이스터섬에서 가져온 것이고, 미라는 이집트에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 내가 런던 사람이면 할 일 없을 때 대영박물관에 자주 갈 것 같다. 가도 가도 볼 것이 많아 보인다.
대영박물관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블로거들에게 유명한 플랫아이언 식당이 있기 때문에 그 곳을 향해 이동하였다. 플랫아이언은, 도끼칼과 맛나게 생긴 스테이크 사진을 너무 많이 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스테이크는 적당히 맛있는 수준이었고 버거는 그저 그랬다. 맛은 적당하지만 가격을 고려한다면 훌륭했다.
식사를 마치고 이번 여행의 유일한 쇼핑을 위해 버스를 타고 버버리 팩토리 아울렛으로 이동하였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명품 포함 모든 옷은 인터넷으로만 사는 나인데, 왜 런던에 오니 버버리는 꼭 가고 싶었던 것일까? 보라씨에게 원피스, 머플러를 사주고, 장인/장모님, 처남, 엄마/아빠의 적당한 티 한 장씩을 선물로 구매했고, 또 이 곳에서 보라씨에게 가방을 선물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내 가방은 버버리가 되었다. 버버리 제품들이 국내에 비해 저렴했고, 택스리펀을 통해 10% 정도의 환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들리기를 잘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곳에서 또 화장실 문제 발생. 크게 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혹시 모르니 화장실을 갔다가 호텔로 가려고 했으나, 그 큰 매장에 화장실이 없었다. 이 직원분들 화장실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제품도 구매했는데 좀 쓰게 해줬다면 좋았을 것을 말이다. 결국에는 필요한 제품을 빠르게 구매하고 버버리 매장에서 나왔다. 그리고 지하철로 가는 도중 대형 마트인 테스코를 발견하여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잠시 들렸다. 그런데 테스코의 화장실 앞에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문구가 써있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이 대형마트에서도 화장실을 못쓰면 어쩌라는 것인가. 결국 지하철역까지 갔다. 물론 그 지하철역에도 화장실은 없었다.
그렇게 호텔까지 다시 들어와서 화장실을 부랴부랴 사용하고, 쇼핑백을 내려놓은 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지하철을 이용하여 버킹엄 궁으로 이동하였다. 30분쯤 버킹엄 궁의 야경을 바라보고, 또 다른 유명한 맛집 중 하나인 버거앤랍스타로 이동했다. 오후 8시쯤 되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20분정도를 기다려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음악도 크게 틀어놓고 대화도 크게 하는 분위기로 화기애애하다. 랍스타가 포함된 버거 하나와 가장 큰 랍스타를 그릴반 스팀반으로 주문하여 먹었는데,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다.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는데 아쉽게도 다음 날이 런던을 떠나는 날이었고, 매우 피곤한 관계로 그 분위기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음식만 먹고 바로 일어난 뒤, 다시 지하철을 이용해서 호텔로 이동하였고, 호텔 도착 후 그대로 뻗었다.
17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핌리코 지하철역으로 가서 오이스터카드를 반납하고 남은 금액을 출금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며 보니 우리나라 지하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즉석사진기가 있기에 보라씨와 함께 찰칵. 상당히 의미심장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곧 호텔로 복귀하여 아침을 먹고 짐가방을 다 챙겨서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보라씨가 우버택시를 통해 택시를 부르려고 했는데 신용카드 정보와 심카드의 불일치로 실패. 호텔에 보니 49파운드에 미니캡이라는 것이 있길래 불러달라고 했다. 그리고 20분 정도 있다가 기사가 도착했는데 깔끔한 정장차림이었고, 자동차는 놀랍게도 벤츠였다. 조금 구형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깨끗했고 무엇보다 미니캡이 벤츠라는 사실에 놀라웠다. 이렇게 해서 정말 좋은 승차감과 럭셔리함으로 기분 좋게 다시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택스리펀을 위해 이동했는데 보라씨 영수증은 담당자가 택스리펀을 위한 스탬프를 찍어주고, 나는 다른 담당자가 봤는데 마지막 포인트가 암스테르담이니까 거기서 찍어야 한다고 하여, 보라씨의 택스리펀만 히드로 공항에서 받게 되었다.
이후 PP 카드를 이용하여 아스파이어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점심 식사를 하였다. PP카드의 위력이 계속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스파이어 라운지는 인천공항의 아시아나 라운지와 비교하면 물론 여러가지로 조금 레벨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공항 내에서 식사와 휴식이 쾌적하게 보장될 수 있는 건 좋았다. 여담이지만 히드로 공항 터미널5 는 흡연실이 없는 놀라움이 있는 곳이었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이제 영국항공을 통해 암스테르담으로 이동을 해야 했는데, 24시간 전에 미리 온라인 티켓팅을 해놓지 않은 관계로 보라씨와의 좌석이 떨어져버렸다. 1시간 20분 가량의 비행이기에 좌석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안스테르담 도착 후에 보라씨에게 들은 얘기로는 보라씨 좌석 주변에는 망나니들이 10명 가량 술 먹고 계속 큰 소리로 떠들어서 불편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암스테르담이 매춘과 대마가 합법인 지역이니 여러 곳에서 젊은 청춘들이 광란의 파티를 위해 많이 몰리는 것 같다.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매춘과 대마를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 유러피안들에게는 암스테르담이 천국과 같은 곳일 수도 있겠다.
곧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몇 시간동안 참았던 담배를 피고, 바로 트레인 티켓 구매 후 탑승. 두 정거장이 지나니 더블트리바이힐튼 호텔이 나왔다. 이제야 제대로 된 호텔이 나왔기에 우리는 기뻤다. 겉 모양도 제대로 였고, 안도 예쁘고 깨끗하게 잘되어 있었다. 물론 조식은 불포함이고 가격은 루나시몬스에 비해 비쌌다. 보라씨가 말하기를 이 쪽은 2박이기에 좀 더 비싼 숙소로 결정했다고 한다. 암스테르담은 운하때문에 도시 자체가 런던보다 아름다웠고, 최초에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호텔, 도시경관, 호텔과 공항이 매우 가까운 것, 호텔이 중앙역에 있다는 것 등등 모든 것이 좋았다. 물론 끝까지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호텔에서의 잠깐의 휴식 후 동네 구경 겸 저녁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와우. 내가 이 세상에 본 곳은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이 곳 경치는 월드클래스급이 확실해 보였다. 여행이 끝난 지금에 와서 다시금 암스테르담과 런던을 비교해보아도 암스테르담이 도시의 아름다움으로는 한 수 위라는 것이 내 결론. 여기 저기를 거닐며 남들이 피우고 있는 대마 냄새도 조금씩 맡아가며 구경하다가, 조용하고 맛있어 보이는 라산타마리아 식당에 들어갔다.
이 곳은 분위기가 좋고, 깨끗한 것이 장점. 다만 음식을 시키고 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 사이에 술을 잘 못하는 내가 맥주를 한잔 다 마시고 다시 시킬 정도. 립아이 스테이크와 프라운 어쩌구를 시켜먹었는데 아무래도 립아이 스테이크는 꽃등심이라고 하던데 그게 아닌 뭔가 다른 것을 준 것인지 고기 냄새가 조금 나면서 크게 맛있지는 않았고, 주인장이 추천한 소스는 맵기만 하고 맛은 없었다. 하지만 프라운은 맛있었다. 사실 요리와 관계없이 그냥 큰 새우라서 맛이 있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식당에서 나와서 야경 구경을 조금 더 하고 다시 숙소로 이동. 스테이크를 꽤 많이 먹었는데도 신라면이 또 땡겼다. 그래서 신라면을 먹고 취침.
오전 8시에 일어나서 씻은 후 바로 숙소에서 나왔다. 이 날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하여 또 다른 암스테르담의 멋을 보여주고 있었다. 트램을 타기 위해 암스테르담 중앙역 근처로 이동하였고, 24시간 트램이용권을 구매하며 이 날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트램을 타고 이미 예약된 안네프랑크하우스로 이동하였다. 안네프랑크하우스 근처에 도착하니 시간이 30분정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Lunchcafé Dialoog 카페에서 샌드위치, 양파맛 베이글과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10시에 안네 프랑크 하우스에 입장하였고,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 곳은 나치즘에 대한 생각, 인종차별에 대한 생각, 그 당시 이 집의 상황 등 다양하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곳이었고 확실히 의미가 있는 곳이었으며 지금까지도 다녀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장소 중 한 곳이 되었다.
안네프랑크하우스에서 나온 뒤 커널크루즈를 타기 위해 투어스앤티켓스에 들어가서 커널크루즈 티켓 2장을 시간에 맞게 구매하고, 오후 일정이 비어있는 관계로 하이네킨 체험관 티켓도 2장을 구매했다.
커널크루즈에는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지원되어 암스테르담에 대한 유익한 지식을 얻으며 좋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1시간 정도의 커널크루즈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위해 그 근처의 유명한 맛집인 더팬케이크베이커리로 이동하였다. 아이스크림이 올라가 있는 팬케이크와 이것 저것 많이 들어간 오믈렛을 주문했는데 상황이 뭔가 조금 이상했다. 주변에 있는 유러피언들이 내가 먹는 팬케이크를 쳐다보는 것이다. 그런 시선이 이상했던 나는 그들의 팬케이크와 나의 팬케이크를 비교해보았다. 그들이 먹는 팬케이크를 보니 대부분 플레인 팬케이크 느낌이었고, 내 꺼는 쓸데없이 화려했다. 알고보니 팬케이크는 생각했던 그것이 아닌 정교하게 만들어진 따뜻한 얇은 호떡이었고, 그 호떡 위에 아이스크림이 있으니 아이스크림이 빠르게 녹아내리며 접시가 금새 더러워져갔으며, 팬케이스와 아이스크림은 전혀 어울리는 맛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 유러피언들은 내 팬케이크가 신기했던 것이다. 생각없이 먹기는 했는데 좀 후회되더라. 그냥 평범한 것을 시켰다면 맛있었을 텐데 말이다. 거기에 오믈렛은 짠 편이었다. 때문에 팬케이크 한 입, 오믈렛 한 입을 먹으며 최대한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기억된다. 분명한 것은 팬케이크 자체는 맛있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얇은 호떡 맛. 집에서 만들어봐야겠다.
다음으로 트램을 타고 ‘Iamsterdam’ 을 보기 위하여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앞으로 향했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있었기 때문에 사진만 적당히 찍고 빠져나왔다. 근처에 반 고흐 미술관도 있었고 다양하게 뭔가 볼거리가 있었는데 크게 내키지 않는 관계로 그냥 지나쳐서 투어스앤티켓스에서 구매한 하이네킨 체험관으로 이동하였다.
하이네킨 체험관에 다가가니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게 서있었다. 금방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섰는데 좀처럼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몸도 지쳐있고, 여기에서 기분이 조금 상했던 것 같다. 줄은 길고 뒤에서는 어디서 온지 모르는 관광객 남자들이 대마를 피웠다가 담배를 피웠다가 하며 히죽히죽 웃으며 큰 소리로 계속 떠들고 있는데 점점 기분이 상해갔다. 그들의 담배/대마 피는 자유를 위해 내가 그 냄새를 맡아야 했고, 주변을 고려하지 않는 그들의 수다떠는 자유를 위해 나는 그 큰 소리들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남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자유가 그 곳에는 있었다. 어쨌거나 그것도 문화라고 그 긴 줄 사방에서 다들 같이 담배를 뿜고 대마를 뿜고 술을 마시고 큰 소리로 떠들고 난리도 아니었다.
어찌어찌해서 겨우겨우 입장. 보라씨와 함께 상한 기분으로 들어갔는데 체험관 중간에 들어서니 다시 줄서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이미 기다림에 지친 나는 보라씨와 나가기로 합의하고 중간에 빠져 나왔다. 이준열사 기념관이 멀어서 포기했었는데 이 정도 시간이라면 그냥 이준 열사 기념관에 다녀올 것을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사실상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안좋은 기분을 최대한 풀고 숙소에서 쉬기 위해 숙소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네덜란드 왕궁으로 향했다. 네덜란드 왕궁 앞의 담광장에서 구경을 하며 기분을 잠시 풀며 대화를 했으나, 앉을 곳이 없어서 오래있지는 못하고 암스테르담의 감자튀김 맛집으로 알려진 마네킨피스로 향했다.
마네킨피스에서 감자튀김을 사서 숙소로 돌아온 뒤 신라면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마네킨피스의 감자튀김은 싸고 양이 많지만 흔히 먹는 그냥 감자튀김이었다. 한 10개 먹으니 질리기 시작했다. 간단히 저녁을 마치고 나니 오후 8시 정도가 되었는데, 더 활동하지 않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19일 오전 6시에 일어나서 호텔 체크아웃 후 트레인을 타고 바로 스키폴 공항으로 이동. 공항에 도착한 뒤 런던에서 처리하지 못한 택스리펀을 진행하고, 오전 10시 비행기로 런던 히드로공항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런던에서 다시 아스파이어 라운지에서 점심식사/휴식 후 오후 12시 50분에 인천행 비행기 탑승.
올 때보다 더 심각한 맛이 나는 두 번의 기내식을 먹으며 인천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도착하니 한국시간으로 2월 20일 오전 8시 30분이었고, 마중 나온 아버지와 어머니, 아가에게 보라씨를 맡기고, 그대로 회사에 출근하며 여행은 완전히 끝이 났다.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것 중 가장 큰 것은 한국이 그렇게 모자라는 나라는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런던/암스테르담 여행 이전에 인도, 태국, 필리핀, 사이판, 일본에 경험이 있었지만, 서양 국가는 처음 온 것이라 런던/암스테르담에 대해 기대가 컸었는데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고 그런 것 같다.
다른 나라의 도시를 본 것은 매우 좋았고 이색적이었지만, 가기 전 예상했던 그들의 문화적 우월함은 느낄 수가 없었다. 미래의 어느 시점 한국이 인당 GDP, 물가 대비 임금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간다면,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나라가 잘 사는 것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것도 느끼게 될 것 같다. 여기는 동방예의지국이거든. 지금 경제가 안 좋아서 잠시 숨어있는 것일 뿐.
이랬든 저랬든 다른 나라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죽기 전에 세계 일주를 한 번 해볼 수 있을까?…
일과 육아에 지쳐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행 계획을 잘 짜주고, 잘 이끌어주고, 함께 해준 보라씨에게 감사하고, 이런 긴 시간동안 휴가를 떠날 수 있게 아가를 돌봐주신 어머니, 아버지와 엄마 아빠 없이 긴 시간 기다려주었던 아들 지환에게 감사하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