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정도 지난 이야기이다. 20대 중후반, 어떤 대기업의 자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모회사인 대기업의 한 팀이 우리 자회사로 소속이 변경되는 일이 발생했다. 물론 그 팀과 팀원의 여러 조건들은 그대로 유지되는 채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분들의 일하는 곳, 연봉 등 여러 조건이 모두 그대로였고, 소속만 자회사로 변경되는 것이었다.
그 팀이 자회사로 내려오자, 우리 팀의 상위에 존재하는 팀이 되었다. 그 때문에 우리 팀과 그 팀은 함께 모여서 회식을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어느 회식 날이었다. 술을 한창 먹고, 가장 높으신 부장님께서 본인의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우리가 머물 수 있었던 시간은 매우 짧았음에도 모두를 데려갔다. 아마도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집을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별생각 없이 부장님을 따라갔다. 뚝섬유원지역에 내려서 3분 정도 걸어갔더니, 부장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나왔다. 국민 평수인 30평대 초반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꽤 큰 크기였다. 40평에서 70평 사이가 될 것 같은데, 오랜 기억이라서 정확한 평수가 판단이 안 된다. 한강 조망의 아파트로 당시에는 신축이었던 것 같다.
놀라운 사실은, 내가 그때 그 집에 대해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 월세 집에도 화장실이 있고, 거실이 있고, 방이 있고, 그 집에도 마찬가지로 그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왜 집값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왜 그 집이 높은 가치를 가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기준으로, 뚝섬유원지역 근처의 40평 초과 한강 조망 아파트들의 가격은 20억이 넘는다. 우리나라 상위 1%의 자산 커트라인이 30억임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비싼 아파트이다. 부장님은 부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커가던 부장님의 아이들은 강력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결국 좋은 대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했을 것이다. 부장님은 이제 나이가 들어 회사에서 잘렸을지는 모르겠지만, 잘렸더라도 그냥 그냥 살아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부장님의 와이프도 돈을 많이 벌고 있었으니, 더욱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결국 돈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결국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여생은 적당한 요양원에서 보내는 코스를 밟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꽤 괜찮은 인생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현재 하는 사업을 해나가며, 또 나이가 들어가며, 집의 가치를 판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때 집의 가치를 판단할 줄 알았다면, 더 빠르게 부를 축적하거나, 지금보다 많은 양의 부를 축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집의 가치조차 판단하지 못했던 그때. 그래도 그때의 그 젊음은, 몹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