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투표에 대한 세 가지 추억
This post was written on June 15, 2021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또 의욕이 있는 분이라 우리 반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강제적인 야간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특별한 사유가 없이 야간 자율학습에 빠지면 책상 위에 누운 채로 10대의 몽둥이찜질을 당해야 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 워낙 공부를 못하는 학교였기 때문에, 반의 모든 인원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담임 선생님의 목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 우리 반 학생들이 모두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것이 담임 선생님의 또 다른 목표이기도 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함께 하면 더 친해진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 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이래저래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하므로 고생 많이 하셨다.
  • 이런 체벌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현실에 존재하는 슬픈 일상이었다.

한 번은 어느 토요일에 야간 자율학습에 빠지게 되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냥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하지만 자유의 기쁨은 잠시였고, 몽둥이찜질에 대한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주말 내내 몽둥이찜질을 당하지 않을 방법만 생각했던 것 같다. 확실하게 맞지 않을 방법이 있었다. 설득해보고, 안되면 도망가는 것이었다.

월요일 종례 시간이 되었다. 토요일에 야간 자율학습에 빠진 인원이 나를 포함하여 3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2명은 먼저 각각 10대의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저는 왜 맞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뭐라고?” / “왜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담임 선생님께서 엄청나게 화를 내실 것으로 생각했다. 그 때문에 뛰어서 도망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께서는 크게 당황하셔서 잠시 얼음이 되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선생님은 내가 도망갈 가능성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신 것 같다.

이때, 잠시 얼음이 되셨던 담임 선생님은 놀라운 결정을 하셨다. 내가 맞아야 하는지 아닌 지에 대해서 투표로 결정하신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투표는 ( [1] 맞는다 / [2] 안 맞는다 )로 결정이 될 거로 생각했다. 반 아이들이 나를 미워해도 자신이 맞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 [2] 안 맞는다 )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됐다. 안 맞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속으로 매우 기뻤다.

  • 고등학교 1학년 때, 이 선생님에게 동일하게 10대를 맞을 적이 있었는데 한동안 걷지도 못했다. 경험자로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다시 한번 놀라운 결정을 하셨다. ( [1] 10대 / [2] 1대 / [3] 안 맞는다 )로 투표를 하셨다. 나는 즉각 잘못된 선택지라고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으나, 담임 선생님은 “그만”이라고 말씀하시며 내 말을 자르셨다. 나도 더 말할 수 없었다. 당시 상황과 분위기에서 선생님이 크게 양보하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그 이상으로 선생님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비밀 투표가 아니었고 손을 드는 방식의 투표였다. 반 아이들은 대부분 ( [2] 1대 )에 투표했다. 왜냐하면 ( [1] 10대 )를 선택하면 자신도 나중에 10대를 맞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 두려웠을 것이고, ( [3] 안 맞는다 )를 선택하기에는 담임 선생님께 죄송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 [2] 1대 )는 모두가 그 상황을 모면하기에 가장 옳은 결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 대를 맞았고 상황은 종결되었다. 물론 한 대도 아팠다.

  • 솔직히 그 당시 투표 결과가 ( [1] 10대 )가 나왔다면, 나는 최초의 계획대로 도망쳤을 것이다. 반 아이들의 의견이 당시의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아프기가 싫었을 뿐이었다.

말도 안 되는 투표이며 또한 애틋한 투표였다.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이때가 떠오른다. 이 투표에 대해 여전히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좋게 기억한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제 환갑이 되셨을 것 같은데,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행복하시기를.

군대에서 분대장을 맡았을 때였다. 어느 날부터 부대에 체력 강화와 관련된 훈련이 사라지고 있었다. 군대는 체력이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분대장을 맡자마자 분대 전체에 일과 종료 후 구보를 하자는 제안을 했고 이를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민주주의 방식으로 결정을 하고 싶었다. 투표 결과는 1명의 반대를 제외하고 모두가 찬성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인기 좋은 분대장이었으니 내 의견에 따랐던 것 같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몇몇 분대원들이 나에게 와서 일과 종료 후 구보에 대해 재투표를 하자고 제안했다. 단칼에 거절했다. 이후 점차 많은 것들에 대해 독재주의 방식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전역할 때 즈음에는 해당 분대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분대장이 됐던 것 같다.

가끔 이때를 후회하기도 했고, 또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독재주의적 결정은 사람을 질리게 만들고, 민주주의적 결정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 100% 나약한 결정이 나올 것은 독재주의로 결정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민주주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 국가의 정치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국가 차원의 정치에서 독재주의는 문제가 심각하다.(물론 아닌 경우도 간혹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진심 섞인 대화를 더 많이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대화의 부족에서 온 문제였던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때의 일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한 나의 행동에 대한 벌은 아니었나 싶다. 비슷한 부분이 많다.

  • 여담이지만 군대에서 이런 식으로 많이 고민하고 여러모로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되어서 전역했던 것 같지는 않다.

이번에 아파트에서 투표를 했다. 아파트명 변경에 대한 투표였다.

1. 아파트명 변경에 찬성하는가? ( [1] 찬성 / [2] 반대 )
2. 아파트명 변경에 찬성한다면, 어떤 이름이 좋은가? ( [1] A / [2] B )

와이프가 우리 세대 대표로 투표를 해서 안타깝게도 나는 투표용지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곧 투표 결과가 나왔다.

1. 아파트명 변경에 찬성하는가? ( [1] 찬성 300 / [2] 반대 100 )
2. 아파트명 변경에 찬성한다면, 어떤 이름이 좋은가? ( [1] A 160 / [2] B 140 )

  • 위 숫자는 실제 숫자와 다르다.

투표 결과를 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아파트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투표 결과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1번에 반대한 100명은 2번에 대한 투표를 못 하는 방식의 투표였기 때문이다. 2번에 투표한 사람들의 합계가 1번의 찬성 인원수와 같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즉각 아파트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투표의 문제점에 대해서 올렸다. 평소 해당 커뮤니티에 글을 전혀 쓰지 않지만, 이 투표가 정치적인 조작이라고 생각하여 급하게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댓글이 쌓여가며 알게 되었다. 조작이 아니라 단순한 실수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내용에 대해 인지하여, 원래 썼던 강한 어조의 글들을 조심스럽게 최대한 정중한 글로 수정했다. 또한, 이웃을 무작정 의심한 것에 대해 반성했다.

투표지는 아래와 비슷해야 했을 것이다.

1. 아파트명 변경에 찬성하는가? ( [1] 찬성 / [2] 반대 )
2. 만약 아파트명이 변경된다면, 어떤 이름이 좋은가? ( [1] A / [2] B )

앞으로 오래도록 기억나는 사건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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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June 15, 2021 Filed under: ETC; Tagged as: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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