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이마가 넓은 편이라서, 초등학교 때부터 늘 앞머리를 내리는 형태의 스타일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 미용실에 가면, 꼭 바가지 씌워놓고 자른 것처럼 호섭이 머리를 만들어 줬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에 그 머리가 유행이었나? 어디에서나 늘 그 머리를 만들어 줬다. 학교에 가면 호섭이, 대머리독수리(이마가 넓어서), 황비홍 등의 별명을 가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싫은 별명들이다.
- 그전까지 미용실은 여자들만 가는 곳이었다. 남자들은 이발소에 다녔었는데, 그 시절부터 남자도 미용실을 가는 문화로 변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두발 자유화가 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늘 스포츠머리를 유지해야 했다. 이마가 넓은 나에게 스포츠머리는 답이 없는 것이라, 그냥 아무렇게나 자르고 다니다가, 방학 때만 조금씩 길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잔인한 규칙이었던 것 같다. 그 스포츠머리의 규정을 통해 정말 잃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손해 배상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학교 시절에는 드디어 머리카락을 다시 기를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시절에 매직 스트레이트 펌이 유행이라서, 어떤 미용실에서 매직 스트레이트를 했는데, 머리카락이 타버렸다. 머리카락마다 타는 시간이 다른데, 미숙한 헤어 디자이너(?)가 머리를 망쳐버린 것이다. 20살의 나는 너무 예민해서, 헤어 스타일이 잘못된 것에 대해 굉장히 슬퍼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슬퍼했는지, 뭐가 그렇게 슬픈 것인지, 지금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슬퍼하던 나약한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 사실 다운펌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당시에는 다운펌이 없었다. 스트레이트를 하면 다운펌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군대에 가게 되었다. 머리는 다시 스포츠로 복귀. 군대에서 선임들이 잘라주었다. 스타일은 다시 답이 없어졌다.
군대를 전역하고, 집 근처에 꽤 괜찮은 남자 헤어 디자이너가 있는 미용실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꽤 괜찮은 헤어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때는 펌을 하거나 뭔가를 하지 않았는데, 그 헤어 디자이너가 커트만으로 스타일을 잘 만들었고, 왁스를 매일 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다. 멋진 20대가 시작된 것이다.
아쉽게도 1년 정도 지난 후에 그 남자 헤어 디자이너는 다른 미용실로 떠났고, 이후 그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나는 남자 헤어 디자이너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남자 머리는 남자가 자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20대 중반이 되고,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머리에 지루성 피부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때는 피부염이 꽤 심해서 머리 한가운데에 500원 짜리 탈모 현상이 벌어졌다. 여름에도 비니를 쓰고 다녔던 것 같다. 당시에는 비니가 유행이라서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피부염은 피부과 치료를 통해 잦아들었고, 곧 머리 상태는 괜찮아졌지만, 트라우마가 깊이 남아서, 꽤 오랜 시간동안 나를 괴롭혔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보고 있으면, 내 머리에 아직도 500원짜리 구멍이 뚫려있는지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교 4학년의 1년을 인도에서 보내게 되었다. 1년 동안 헤어컷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두었다. 그때의 사진을 보면 머리가 더부룩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도에서 머리를 한번 커트해 볼 만도 한데, 그런 용기가 없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는 회사 생활을 해나가며, 한 5년 동안 같은 미용실에 다녔다. 꽤 규모가 있는 미용실이었다. 처음에는 커트만 하다가, 지금 아내를 만나기 직전부터 결혼하고 30대 중반까지는 한달 반 정도에 한번씩 펌, 다운펌, 염색, 커트를 동시에 했다. 남자 원장 선생님이 직접 했는데, 불필요한 잡담이 없어서 좋았다. 시간이 4시간 정도 걸렸는데, 외모를 위해서 참고 했던 것 같다.
30대 중반에는 부천으로 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갈만한 미용실이 없어서, 그냥 내 스스로 커트를 하다가 망했다. 그래서 집에서 머리를 그냥 밀어버렸다. 이 때 번아웃이 온 상황이었고, 그에 따라서 그런 행동을 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다.
이후 40대 초반이 된 지금까지 한 5년 정도는 블루클럽만 가고 있다. 계속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리고 최근에 모자를 벗기 시작했다. 모자에 머리가 너무 눌려서 헤어 형태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 나이도 먹어서 머리카락도 얇아진 것 같고, 모자 때문에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것 같아서, 모자를 쓰지 않고 다니고 있다. 답답해서 어떤 제품도 사용하지 못하니, 그냥 날것 그대로 다니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서 헤어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던 적은 한 1~2년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다. 그래도 재미있는 인생이다.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