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들과 함께 한 고행 같은 여름 휴가, 할머니의 49재 -2019년 7월
This post was written on July 31, 2019

2019년 07월 27일 : 집 → 수목화송정마을오토캠핑장
2019년 07월 28일 : 수목화송정마을오토캠핑장 → 화진포 해수욕장 → 수목화송정마을오토캠핑장
2019년 07월 29일 : 수목화송정마을오토캠핑장 → 건봉사 → 집

7월 29일 월요일이 할머니의 49재였다. 외가 친척 어른들은 49재를 평소에 우리 집에서 자주 가는 고성의 건봉사에 맡겼다. 그리고 어머니는 우리 가족이 토요일부터 49재까지 외가 친척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고. 그에 따라 짧은 여름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다.

날씨 예보는 비가 온다고 하였고, 아버지는 새로 사신 캠핑카를 가져가서 캠핑을 하시겠다고 하시고, 아버지를 따라서 외가 친척들도 그 캠핑장으로 다 모이신다고 하였다. 안봐도 고생길이 훤한 관계로 나는 와이프, 아이와 함께 28일 일요일에 출발해서 29일 월요일에 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27일 토요일에 집에서 일어나보니 또 육아의 즐거운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러나 저러나 똑같다고 생각하여 27일 토요일에 캠핑장으로 가게 되었다.

기분 좋게 고속도로를 씽씽 달려서 수목화송정마을오토캠핑장에 도착하였다. 도착하고 보니 캠핑장은 생각 이상으로 무척 좋았으나 아쉽게도 날씨는 돕지 않았다. 캠핑카 한 대, 텐트는 4개에 인원만 16명이었다. 도착하여 저녁밥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괜찮았었는데, 밤이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손자를 생각하는 마음에 캠핑카를 우리 가족에게 양보하셨다. 그리고 캠핑카의 에어컨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불편해서 나는 그 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28일 토요일 새벽 3시가 되니 아버지와 둘째 삼촌이 일어나셨고 그 때부터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높은 온도, 습도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 외가 친척들이 다 온 것이 아니다. 이 고생을 알고 반만 온 것이다.
※ 2박 3일 내내 사우나를 하다가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28일 오전에는 아이를 캠핑장의 수영장에 넣었다가, 그래도 덥고 습하여 화진포 해수욕장에 다녀왔다. 그렇게 활동을 했는데도 오전 10시였다. 고통의 시간이 줄어들지 않아서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캠핑카에서 잠시 누워있었더니, 첫째 삼촌의 식구들 중 6명은 떠나고, 셋째 삼촌의 식구들 9명이 추가로 도착하였다. 셋째 삼촌의 식구들은 다행히 따로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곧 떠났다. 사촌 형과 사촌 동생은 그 짧은 시간동안 높은 온도와 습도를 느끼고 이 날씨에 무슨 캠핑이냐며 귀여운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숙소로 떠났다.

나는 제대로 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었다. 방법은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는 방법 뿐이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에어컨 바람을 쐬고, 근처 마트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돌아다니다가 들어오니 저녁이었다. 입맛도 잃었기 때문에 계속 담배만 피고, 더위를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서 샤워를 반복했다. 이 캠핑장에서 2박 3일동안 샤워를 10번 정도 한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밤이 되었고, 다시 캠핑카에 자려고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새벽 6시 정도가 되어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아침 8시가 되자 여기 저기서 철수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고, 세상은 완전히 환하게 밝아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샤워를 하고 그 때부터는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와이프와 아이를 태워놓았다. 그리고 10시 30분쯤 약속된 장소인 건봉사로 출발했다. 11시가 되자 건봉사에 도착했고, 약속된 모든 인원이 건봉사 앞의 주차장이 아닌 공터에 차를 대고 모였다.

11시 30분부터 건봉사에서 점심을 먹었다. 밥은 정말 기똥차게 맛이 있었다. 절밥을 먹기 위해 2시간이나 일찍 갔는데 기다렸던 시간이 아깝지 않다. 좋은 경험이었다. 49재를 시작하는 1시 30분까지 다시 휴식처럼 보이는 습도와의 전쟁을 한 뒤 드디어 49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49재가 시작된지 5분이 지났을 때, 삼촌들과 숙모들, 어머니와 아버지, 사촌 동생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모두 차로 돌아갔다. 사촌 형, 동생과 20분 거리에 있는 커피숖에 가서 2시간동안 대화를 나눴다. 아마 이 2시간이 이 휴가에서 가장 편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49재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다시 건봉사로 복귀했다. 건봉사에 도착하자 곧 삼촌들과 숙모들,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내려오셨고 이렇게 49재가 종료되었다.

이 때가 오후 4시 30분 정도였고, 약 10분 가량의 인사 뒤에 모두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니 오후 9시 10분이었다. 이렇게 이 고행을 마치게 되었고, 나는 너무 기뻤다. 그리고 13시간동안 잠을 잤다.

이 고행 같은 여름휴가는 아마 잊지 못할 것 같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외가 친척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고생스러운 상황이라서 웃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아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신나게 놀았다. 아빠의 휴가는 아이를 위한 것이니 아이가 즐거웠다면 나는 만족한다. 와이프도 워낙 이런 일련의 사건을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머니가 좋아하셨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즘에는 귀한 그 돈을 조금 써서 좋았다.

그러니 결국 행복한 휴가였다는 아름다운 말을 남기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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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July 31, 2019 Filed under: My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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